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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저는 또래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편이었습니다. 선생님과 어머니는 귀엽다고 해주셨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제 몸은 늘 신경 쓰이는 무언가였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직접 겪어보니 아동기의 신체 조건이 자존감에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나중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6세부터 11세 사이, 이 짧은 시기가 아이의 자아 전체를 빚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아존중감은 몸에서 시작됐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부터 성적표에 '양'과 '가'가 줄줄이 찍히기 시작했습니다. 수우미양가로 등급이 나뉘던 시절이었는데, 성적표를 받아 드는 날이면 학교 가는 발걸음이 유독 무거웠습니다. 수학 문제를 모르면 아버지께 여쭤봤는데, 아버지는 진심으로 가르쳐 주시려 했지만 저는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해서 "네, 네"로 대화를 끝내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께서 "나는 어릴 때 배운 것도 다 기억하는데 너는 왜 모르냐"라고 하셨을 때, 그 말이 생각보다 깊이 박혔습니다.
아동기 발달심리에서 자아존중감(self-esteem)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자아존중감이란 자기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감각을 의미하는데, 이 시기에는 특히 신체 만족도와 학업 성취, 또래 관계가 이 감각을 형성하는 세 축이 됩니다(출처: NCBI, 아동 자아존중감 연구). 제 경험상 이 세 가지는 따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몸이 크다는 이유로 운동을 잘할 거라는 기대를 받고, 그 기대가 실제 활동 기회로 이어지고, 활동이 또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기대 안에서 움츠러드는 편이었습니다. 통통한 몸이 귀엽다고 여겨지는 어른들의 시선과, 그 몸으로 함께 뛰어야 하는 친구들 사이의 시선은 달랐거든요. 에릭슨(Erik Erikson)의 심리사회 발달 이론에서는 아동기를 근면성 대 열등감의 시기로 봅니다. 여기서 열등감이란 자신의 능력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굳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학업도 체육도 뚜렷한 성취를 만들지 못했던 제게 이 열등감은 꽤 익숙한 감각이었습니다.
탈중심화 능력이 자라는 방식
피아제(Jean Piaget)의 인지발달 이론에서 아동기는 구체적 조작기(Concrete Operational Stage)에 해당합니다. 구체적 조작기란 직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논리적으로 추론하기 시작하는 시기를 뜻합니다. 이 시기의 핵심 변화 중 하나가 탈중심화(Decentration)인데, 탈중심화란 나의 시각에서 벗어나 타인의 입장과 감정을 추론할 수 있는 조망수용능력이 생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 경험을 돌이켜보면, 이 능력이 자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친구였습니다. 사춘기 무렵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고, 새 학교에서 저처럼 통통하고 공부도 비슷한 수준이었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말이 잘 통했고, 같이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 웃음 안에서 저는 조금씩 숨을 돌렸습니다. 혼자 지내는 아이는 자기 기준 안에서만 자신을 평가하게 되는데,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함께하면 그 기준이 훨씬 유연해집니다.
- 신체 만족도가 높을수록 자아존중감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음
- 학업 성취에서의 잦은 실패는 열등감을 고착시킬 수 있음
- 또래와의 긍정적 상호작용이 탈중심화 능력 발달을 촉진함
- 부모와 함께하는 활동은 혼자 하는 것보다 자존감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줌
부모역할, 격려와 방임 사이에서
저희 집은 장애가 있는 남동생이 있었고,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동생을 언어치료실에 데려가거나 학교 특수반 일에 신경 쓰시느라 바쁘셨고, 자연스럽게 저는 혼자인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 외로움을 당시에는 그냥 견뎠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에 제 자존감을 붙들어 준 건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제가 작은 의견을 말해도 귀 기울여 주시고, 관심과 사랑을 꾸준히 보내주셨던 선생님 덕분에 학교라는 공간이 숨쉬는 곳이 됐습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아동기 부모의 역할을 크게 격려자와 조력자로 구분합니다. 격려자로서의 역할이란 아이가 실패했을 때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고 말해주는 것, 그 자체입니다. 반면 조력자로서의 역할은 적절한 수준의 과제를 주고 스스로 해내도록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아이를 대신해서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수학 지도가 떠오릅니다. 아버지는 분명 진심이셨는데, 제 수준보다 한참 높은 방식으로 설명하셨고, 저는 따라가지 못한 채 대화를 끝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 "잘해야 해"가 아니라 "이 문제 하나만 같이 풀어보자"는 접근이었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자녀의 노력에 끊임없이 격려하는 태도와, 성취 가능한 수준의 과제를 주는 것, 이 두 가지가 근면성(Industry)을 키우는 핵심이라고 발달심리학은 말합니다. 근면성이란 단순히 열심히 하는 성격이 아니라, "내가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는 효능감을 체험으로 익히는 과정입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아동 양육 지침).
강압도 방임도 아닌 '범위 안의 선택'
최근 드라마 '참교육'을 보면서 제 경험과 겹치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수업 중 교실에 들어와 교사에게 참견하고, 아이가 친구에게 공을 던져 눈을 다칠 뻔한 상황에서도 사과 한마디 없이 자식 편만 드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점점 움츠러드는 게 화면으로도 보였습니다. 규칙을 제재하지 않고 방임하거나, 반대로 부모의 불안을 아이에게 쏟아내는 강압적 간섭, 이 두 극단은 결국 같은 곳에 도달합니다. 아이의 자아존중감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긍정적 자아개념(Positive Self-Concept)을 형성하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이란, 범위 안에서 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긍정적 자아개념이란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라는 내면의 확신으로, 이 시기에 형성된 자아개념은 이후 청소년기의 자아정체감(Ego Identity) 형성에 직접 연결됩니다. 자아정체감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는 감각입니다. 에릭슨은 아동기를 바로 이 자아성장의 결정적 시기라고 불렀습니다. 태권도, 축구, 댄스 학원을 보내는 부모들의 선택이 단순한 체력 관리가 아니라 신체 만족도와 성취 경험을 함께 쌓게 하려는 본능적 시도처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동기에 자아존중감이 낮으면 나중에도 계속 낮은가요?
A.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낮은 자존감이 고착되는 데는 환경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같은 처지의 친구를 만나거나 관심 어린 교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회복의 실마리가 생겼습니다. 다만 이 시기에 지속적으로 실패 경험이 쌓이면 열등감이 굳어질 수 있으므로, 작은 성취 경험을 꾸준히 만들어 주는 환경이 중요합니다.
Q. 아이 공부를 도와줄 때 어느 수준까지 개입해야 하나요?
A. 제 경험상 부모가 직접 풀어주거나 정답을 알려주면 아이는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발달심리학에서 말하는 조력자 역할은 아이가 혼자 해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존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반대로 대신 해결해주면 아이는 "나는 혼자 못 한다"는 신호를 내면화하게 됩니다.
Q. 아이가 친구 관계에서 소외되는 것 같을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아동기에는 또래관계가 자아개념 형성에 매우 큰 영향을 줍니다. 제가 새 학교에서 비슷한 친구를 만났을 때 학교생활이 달라졌던 것처럼, 무리하게 인기 있는 그룹에 끼워 넣으려 하기보다는 단 한 명이라도 진짜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훨씬 현실적입니다. 부모가 불안해하는 모습 자체가 아이에게 전달되므로, 먼저 부모 스스로 안정감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Q. 체격이 작거나 비만인 아이, 따로 신경 써야 할 게 있을까요?
A. 아동기에는 신체의 크기와 외형이 또래 관계와 활동 기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줍니다. 체격이 작으면 만만하게 보이거나 활동에서 소외될 수 있고, 비만이면 놀림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영양과 운동 관리는 단순한 건강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태권도나 수영처럼 몸을 움직이며 성취감을 쌓을 수 있는 활동을 아이와 함께 선택하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아동기를 돌아보면, 그 시절 저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누군가 제 편이라는 감각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그 역할을 해주셨고, 이사 후에 만난 친구가 그 역할을 해줬습니다. 부모님은 바쁘셨지만, 그 부재가 전부 상처는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의 자아존중감은 거창한 교육 철학이 아니라 "네 말 들었어", "잘했어가 아니라 애썼어"라는 작은 문장들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동기 발달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지금 주변의 초등학생 아이가 어떤 성취 경험을 하고 있는지, 그 경험 곁에 어른이 함께 있는지부터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아이의 지금이 청소년기의 자아정체감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