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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견인이 되면 피후견인 재산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일하면서 보호자분들이 어르신 통장 하나 건드리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을 직접 봐온 터라, 성년후견제도의 실제 작동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후견인이 되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할 현실적인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팩트: 후견인이 돼도 바로 재산을 쓸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성년후견인이 되면 피후견인의 통장을 자유롭게 관리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첫 단추부터 절차가 촘촘하게 막혀 있습니다.
후견이 개시되면 후견인은 심판문을 받은 날로부터 2개월 이내에 재산목록보고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재산목록보고서란 피후견인 명의의 예금, 보험, 부동산 등 모든 재산을 조사해 목록으로 만든 공식 서류입니다. 이 보고서를 제출하기 전까지는 피후견인 명의의 예금 인출도, 보험금 수령도, 재산 처분도 전혀 할 수 없습니다.
막상 작성하려고 하면 어디에 재산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럴 때는 금융거래조회서비스를 활용하면 됩니다. 금융거래조회서비스란 피후견인 명의로 개설된 금융 계좌와 보험 계약 내역을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로, 금융감독원이 운영하는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를 통해 신청할 수 있습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조회 결과를 받은 뒤 해당 은행과 보험사를 방문해 예금잔액증명서 등 개별 증빙자료를 발급받아 첨부하면 보고서가 완성됩니다. 재산이 아예 없는 경우에도 '재산 없음'을 법원이 확인할 수 있도록 조회 결과를 반드시 첨부해야 합니다.
재산목록보고서를 냈다고 끝이 아닙니다. 이후에는 매년 후견사무보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후견사무보고서란 피후견인의 신상 변화(거주지, 돌봄 상황)와 재산관리 내역(병원비, 세금, 생활비 지출 내역 등)을 기록한 연간 보고서입니다. 제출하지 않으면 법원이 후견인을 직접 소환해 조사할 수 있고, 그래도 제출하지 않으면 후견인을 다른 사람으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출처: 대법원).
부동산 매각이나 임대차 계약 해지처럼 큰 재산 변동이 생길 때는 사전 법원허가가 별도로 필요합니다. 법원허가란 후견인이 피후견인을 대리해 일정 범위 이상의 법률행위를 할 때 법원으로부터 미리 동의를 받는 절차입니다. 법원 허가 없이 재산을 처분한 경우엔 원상회복명령, 후견인 변경, 심하면 형사 고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 후견 개시 후 2개월 이내 → 재산목록보고서 제출 (미제출 시 재산 접근 불가)
- 매년 → 후견사무보고서 제출 (신상 변화 + 재산관리 내역 + 증빙자료 첨부)
- 부동산 매각·임대차 해지 등 → 사전 법원허가 필수
- 피후견인 재산 관리 시 → 반드시 피후견인 명의 계좌·체크카드 사용
경험: 구급차 안에서 은행 서류를 처리했던 날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성년후견인이 없는 상황에서 입원 중인 어르신의 재산을 건드리는 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위험한 일입니다.
요양병원 원무과에서 일하다 보면 병원비가 몇 달치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보호자분이 어르신 통장에 잔액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인출을 못 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절차를 밟으려면 어르신 본인이 직접 동의해야 하는 데, 중환자실 어르신을 병원 밖으로 모시고 나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응급구조요원과 사회복지사가 함께 어르신을 구급차에 모시고, 은행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은행 직원을 구급차 안으로 불러서 서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르신 동의를 받고 나서야 겨우 인출이 됐습니다.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서류 한 장 처리하기 위해 사람이 이렇게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어르신이 외부 공기와 온도 변화에 그대로 노출되어야 한다는 것도요. 병원 안과 바깥은 온도와 공기 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침대에서 구급차로 옮기는 그 짧은 이동조차 중환자 어르신에게는 리스크입니다. 차라리 입원 전에 성년후견인 절차를 미리 밟아두셨다면 이 모든 과정이 필요 없었을 겁니다.
제 동생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동생은 발달장애인으로, 직업훈련을 받고 자동차 공장에 취직해 잘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생 통장을 확인하니 300만 원이 빠져나가 있었습니다. 회사 선배가 퇴근길에 동생을 편의점 ATM으로 데려가 돈을 뽑게 한 뒤 그 돈을 가져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동생이 직접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용한 것이었죠. 다행히 경찰 관계자인 외삼촌 덕분에 각서를 받고 분할 상환으로 해결됐습니다만, 그 일을 겪으면서 제 경험상 발달장애인은 재정적 착취에 매우 취약하다는 걸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나이가 들면 동생의 성년후견인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동생 스스로 저축 훈련도 되어 있고 계좌 관리도 잘 하고 있지만, 아버지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거나 동생이 직접 아프게 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성년후견인 제도의 취지가 '피후견인의 신상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만큼, 제도를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분들은 미리 구조를 파악해 두는 것이 현명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제도의 경직성입니다. 후견인이 되면 피후견인이 사망하거나 정신 상태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중도에 그만둘 수 없습니다. 간병도 해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 하고, 본인 가정도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매년 수십 장의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투명한 관리를 위한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후견인의 상황을 고려한 융통성 있는 운영이 보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성년후견인이 되면 바로 부모님 통장에서 돈 뺄 수 있나요?
A. 일반적으로 후견인이 되면 곧바로 재산을 관리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후견 개시 후 2개월 이내에 재산목록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하기 전까지 피후견인 재산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재산목록보고서가 수리된 이후에야 예금 인출이나 보험금 청구가 가능해집니다.
Q. 후견사무보고서 안 내면 어떻게 되나요?
A. 제출하지 않으면 법원이 후견인에게 보고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래도 응하지 않으면 직접 소환해 조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계속 제출하지 않으면 후견인을 다른 사람으로 변경하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으니 반드시 기한 내에 제출해야 합니다.
Q. 후견인이 되면 부모님 집 팔 수 있나요?
A. 부동산 매각은 반드시 사전 법원허가가 필요한 행위입니다. 법원 허가 없이 매각을 진행하면 원상회복명령이 내려지거나 후견인이 형사 고발될 수 있습니다. 허가 신청 전에 매각 이유와 그 금액을 사용할 계획을 법원에 소명해야 합니다.
Q. 후견인 하기 싫어졌을 때 중간에 그만둘 수 있나요?
A. '그만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는 후견을 종료할 수 없습니다. 피후견인의 정신 상태가 회복되거나 사망하기 전까지는 후견이 계속됩니다. 후견인 변경은 가능하지만 이 역시 법원이 결정하는 사항으로, 본인 의사만으로 즉시 종료되지 않는다는 점을 미리 인지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Q. 발달장애인도 성년후견 대상이 되나요?
A. 성년후견제도는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하거나 결여된 성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발달장애인은 이 요건에 해당할 수 있어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중 상황에 맞는 유형을 선택해 신청할 수 있습니다. 단, 후견 유형마다 후견인의 권한 범위가 다르므로 가정법원의 무료 상담을 먼저 받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
성년후견인이 되면 모든 걸 알아서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제가 경험해보니 절반도 맞지 않았습니다. 재산목록보고서, 후견사무보고서, 법원허가라는 세 겹의 절차가 촘촘하게 맞물려 있고, 그 안에서 후견인은 언제나 피후견인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제도의 취지는 분명히 옳습니다. 동생이 직장 선배에게 재정적으로 이용당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이런 보호 장치가 얼마나 필요한지 실감합니다. 다만, 서류 부담과 제도의 경직성은 현실과 온도 차가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정법원은 현재 후견인을 위한 무료 상담을 운영 중이니,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조언은 직접 문의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