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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주말 면회를 오신 보호자분이 "어머니가 회복은 못 하신다는데, 이 상태로 계속 치료를 받으셔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분의 표정에서 죄책감과 경제적 부담, 그리고 막막함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바로 그런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를 둘러싼 시각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저도 처음엔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연명치료란 무엇인가, 처음 들었을 때의 오해
저도 처음 연명의료결정제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겠다고 하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해주는 제도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이 제도에 대한 오해가 흔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제도에서 말하는 연명치료, 정식 명칭으로는 연명의료란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생명 유지만을 목적으로 시행되는 의학적 시술을 말합니다. 여기서 임종과정이란 단순히 나이가 많거나 병이 심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담당의사 2인이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연명의료에 해당하는 항목들을 법령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습니다.
- 심폐소생술 — 심장이나 호흡이 멈췄을 때 강제로 재개시키는 시술
- 인공호흡기 착용 — 스스로 호흡하지 못할 때 기계로 호흡을 유지하는 장치
- 혈액투석 — 신장 기능이 정지됐을 때 기계로 혈액을 걸러주는 시술
- 항암제 투여, 수혈, 혈압 상승제 투여
- 담당의사가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시술
중요한 것은, 이 항목들의 유보 또는 중단을 결정하더라도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 영양분·수분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은 끝까지 제공된다는 점입니다(출처: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연장을 멈추고 편안한 돌봄을 받는 것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건강할 때 써두는 이유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보면, 막상 어르신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을 때 가족들이 의료진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되묻는 장면을 꽤 자주 봤습니다. 그분들이 나쁜 보호자여서가 아닙니다. 그 순간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 아무도 미리 이야기해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건강한 상태에서 미리 작성해둘 수 있는 법적 문서입니다. 쉽게 말해 "나중에 내가 임종과정에 들어섰을 때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지금 내 손으로 적어두는 것입니다. 이 의향서는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에서 전문가와 충분한 상담을 거친 뒤 작성할 수 있습니다.
반면 연명의료계획서는 이미 말기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담당의사와 함께 작성하는 문서입니다. 여기서 말기환자란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고, 수개월 내 사망이 예상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미리', 연명의료계획서는 '이미 그 상황에서' 작성하는 문서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보호자분들께 들은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남는 말은 "그때 어머니 뜻을 몰랐어서 저희가 더 힘들었어요"였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써두면, 그 고통스러운 판단을 가족에게 떠넘기지 않아도 됩니다.
제도 절차와 실제 적용, 이렇게 이루어진다
연명의료 유보 또는 중단이 실제로 이루어지려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의학적 판단으로, 담당의사 2인이 해당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는 본인의사 확인입니다. 이 두 조건이 모두 갖춰져야만 연명의료 유보 또는 중단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출처: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본인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미리 작성해둔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으면 가장 명확합니다. 현장에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경우도 유효합니다. 만약 두 문서가 없다면 환자 가족 2인의 진술로 본인의사를 추정할 수 있고, 그마저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엔 가족 전원합의로 결정하게 됩니다.
저도 이 절차를 처음 알았을 때 한 가지 걱정이 들었습니다. TV 드라마에서 보면 보험금이나 상속을 노리고 가족이 연명치료 중단을 서두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잖아요. 제 친척 중에도 뇌졸중 이후 한동안 소통이 어려웠지만, 꾸준히 치료를 받아 결국 회복하신 분이 계셨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제도적 안전장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이 제도는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했더라도 환자 본인이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한 연명의료 유보·중단은 의료기관 윤리위원회를 설치한 의료기관에서만 가능하다는 점도 제도의 남용을 막는 중요한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존엄한 죽음을 둘러싼 시각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제도에 대해 "죽음을 준비하는 것 같아 불길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꽤 많다는 걸, 요양병원에서 일하면서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분들의 감정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무게가 있으니까요.
연명의료결정제도를 두고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쪽에서는 이 제도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존엄사의 첫걸음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경제적 이유나 의료 자원 부족을 명분 삼아 환자에게 치료 포기를 강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후자의 걱정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제도를 들여다보고, 현장에서 보호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한 달 70만 원에서 100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대리운전까지 뛰신다는 보호자분, 부모님 두 분을 동시에 요양병원에 모시면서 경제적으로 한계에 몰리신 분들을 봐온 입장에서는, 이 제도가 단순히 "죽음을 빨리 맞이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핵심은 환자 자신이 충분한 설명을 듣고, 원하지 않는 시술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존엄한 죽음이란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의사가 존중받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 의미를 알고 나서는 이 제도가 환자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방향은 맞다고 보입니다. 다만 제도가 올바르게 작동하려면, 의료기관과 가족 모두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전제는 변하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면 나중에 치료를 아예 못 받는 건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이 내려진 이후에만 효력이 생깁니다. 그 이전까지는 모든 일반적인 치료가 그대로 진행됩니다. 또한 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습니다.
Q. 연명치료 중단하면 밥도 안 주고 물도 안 주는 건가요?
A. 이 부분이 가장 많이 오해되는 내용입니다. 연명의료 유보·중단을 결정하더라도 영양분 공급, 수분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은 법적으로 계속 제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기본 간호도 끝까지 이루어집니다.
Q.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어디서 쓸 수 있나요?
A.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에서 전문가와 상담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lst.go.kr)에서 가까운 등록기관을 조회할 수 있고, 전화 상담은 1855-0075 또는 수신자 부담 1422-25로 가능합니다.
Q. 가족이 동의하면 환자 본인 의사 없이도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나요?
A. 가족 전원합의는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상태라면 반드시 본인의 의사가 우선됩니다. 이 점에서 가족이 임의로 결정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요양병원에서 일하면서 죽음 앞에 선 분들을 많이 봐왔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때도 이 제도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직접 공부하고 나서야 "이건 포기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선택을 위한 제도구나"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찬반 논란이 있고, 악용에 대한 우려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환자 본인이 건강할 때 충분한 설명을 듣고, 가족과 함께 천천히 생각해두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제 경험상 이 제도를 미리 알아두신 분들의 가족이, 나중에 훨씬 덜 고통스러운 결정을 하셨습니다. 관심이 생기셨다면 아래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문의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