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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고 싶다는 어르신 (귀가욕구, VERA기법, 감정공감)

jiminflying1 2026. 8. 11. 05:59

목차


    출처 - https://www.magnific.com

    요양원에서 "집에 가야 해"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하시는 어르신을 마주할 때, 현장 종사자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막막해집니다. 저도 요양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시절, 병실 라운딩 중에 그 말을 수도 없이 들었고,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어르신께 진짜 도움이 되는지 오래 고민했습니다. 지금도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 중인 동생과 이 이야기를 자주 나눕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 뒤에 숨겨진 귀가욕구의 진짜 의미

    처음에는 저도 이 말을 단순한 귀가 요청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는 어르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진짜 집에 가고 싶다기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호소하고 계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서 귀가욕구(歸家慾求)란 물리적으로 집이라는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익숙했던 환경,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 자신이 주인이었던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심리적 신호를 의미합니다. 특히 인지기능이 저하된 어르신의 경우, 현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집"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제가 요양병원에서 일할 때 명절이 다가오면 이 현상이 더 뚜렷해졌습니다.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어르신이 가족과 함께 외출하는 모습을 보시고, 보호자가 없거나 너무 멀리 사셔서 면회조차 오기 어려운 어르신들은 그 박탈감을 "집에 가고 싶다"는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그 순간 제가 느낀 건, 이분들이 원하시는 건 집이 아니라 연결감과 안도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장기요양 종사자 교육 자료에서도 반복적 귀가 호소는 인지저하 어르신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행동심리증상(BPSD, 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의 일환으로 분류됩니다. 여기서 BPSD란 치매나 인지저하에 동반되어 나타나는 감정·행동상의 변화를 통칭하는 용어로, 단순 억제보다 환경 조정과 감정 접근이 우선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
    • 낯선 환경에서 오는 불안과 외로움
    • 자신이 통제할 수 있었던 익숙한 일상에 대한 회복 욕구
    • 관심과 위로가 필요하다는 무언의 신호
    요약: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단순 귀가 요청이 아니라 외로움·불안·그리움이 뒤섞인 심리적 신호이므로, 행동 억제보다 감정 접근이 먼저입니다.

     

    VERA기법, 현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동생이 요양원에서 어르신의 반복 호소에 점점 지쳐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매일 같은 말을 듣다 보면 아무리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감정노동의 피로가 쌓이게 됩니다. 그때 저는 동생에게 VERA기법을 함께 이야기해봤습니다.

    VERA기법이란 V(Validation·인정), E(Emotion·감정공감), R(Reassurance·안심), A(Activity·관심전환)의 네 단계로 이루어진 치매 어르신 대상 의사소통 기법입니다. 쉽게 말해 어르신의 말이 사실과 달라도 틀렸다고 정정하지 않고, 먼저 감정을 인정한 뒤 안심시키고 자연스럽게 다른 관심사로 연결하는 대화 흐름입니다.

    첫 번째 단계인 인정(Validation)에서 핵심은 "거기 못 가세요"나 "여기가 어르신 댁이에요" 같은 현실 직면(Reality Orientation) 방식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현실 직면이란 치매 어르신에게 현재의 사실을 반복적으로 인식시키려는 접근인데, 이 방법은 오히려 어르신의 혼란과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신 "집이 많이 그리우신가 봐요"처럼 감정 자체를 먼저 받아주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두 번째 감정공감(Emotion)과 세 번째 안심(Reassurance)은 실제로 이어서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제가 병실 라운딩에서 실제로 써봤는데, "많이 답답하셨겠어요,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라는 한 마디가 어르신의 표정을 눈에 띄게 바꿔놓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보호자가 계신 분이라면 "보호자분께 꼭 말씀 전해드릴게요"라는 한 줄이 어르신에게 실질적인 안도감을 드렸습니다.

    마지막 관심전환(Activity)은 억지로 화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의 평소 관심사와 연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앙치매센터 자료에 따르면 회상 활동(Reminiscence Therapy)이 치매 어르신의 정서 안정과 우울 감소에 효과적인 비약물적 개입으로 권고되고 있습니다(출처: 중앙치매센터). 여기서 회상 활동이란 어르신이 과거에 즐겁게 경험했던 기억을 이야기·사진·물건 등을 통해 떠올리게 하는 활동으로, 현재의 불안보다 과거의 긍정적 감정에 집중하도록 돕는 방법입니다.

    요약: VERA기법은 틀렸다고 정정하지 않고 감정을 인정→공감→안심→관심전환 순으로 대화를 이끌어 어르신의 정서적 안정을 돕는 실용적 의사소통 틀입니다.

     

    감정공감을 넘어 관계로 — 야구 이야기가 바꾼 생활실 풍경

    이론으로는 알고 있어도 현장에서 매일 반복되면 지치는 게 사람입니다. 동생도 그랬고,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생에게 VERA의 A단계, 즉 관심전환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활용해보라고 권했습니다.

    동생이 근무하는 요양원에는 남자 어르신들이 많은 편입니다. 마침 동생도 야구를 좋아하고, 어르신들도 생활실 TV로 야구 경기를 즐겨 보신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이 "집에 가야 해"라고 말씀하실 때, VERA 앞 단계를 자연스럽게 밟은 뒤 "어르신, 오늘 경기는 어느 팀이 이길 것 같으세요?"라고 먼저 물어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동생이 이 방식을 써보고 나서 표정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 정도 효과일 거라곤 예상 못 했습니다. 어르신도 집에 가고 싶다는 말만 반복하시기보다 응원하는 팀 이야기, 예전에 직접 야구장에 가셨던 기억까지 꺼내시면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회상 활동이 실제 돌봄 현장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걸, 동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저도 주간보호센터에서 일할 때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교 시간도 아닌데 문 쪽으로 나가시려는 어르신께 화투 문양이 그려진 퍼즐을 갖다드린 적이 있는데, 그 어르신이 퍼즐에 집중하시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로 돌아오셨습니다. 억지로 앉히려 했다면 더 완강해지셨을 텐데, 관심사를 건드리는 방법 하나가 그 순간을 부드럽게 해결해줬습니다.

    명절처럼 감정이 고조되는 시기에는 꼬지 만들기나 송편 빚기 같은 체험 활동도 효과적입니다. 손을 쓰면서 옛날 가족들과 함께 만들었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그 회상 자체가 어르신의 외로움을 잠시나마 덜어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활동들은 억지로 감정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 스스로 편안해지는 흐름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요약: VERA의 관심전환 단계는 어르신의 개인 관심사와 연결할 때 가장 자연스럽게 효과를 발휘하며, 종사자의 감정노동 부담도 함께 줄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어르신이 "집에 가고 싶다"고 하실 때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안 되나요?

    A. "여기가 어르신 댁이에요"처럼 현실을 직면시키는 방식은 인지저하 어르신에게 오히려 혼란과 불안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감정을 먼저 인정해드리고 안심시키는 접근이 어르신의 정서 안정에 훨씬 효과적입니다.

     

    Q. VERA기법은 치매 어르신에게만 쓸 수 있는 방법인가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지기능이 저하되지 않은 어르신도 요양원 생활에서 외로움이나 불안을 느끼실 수 있고, 그럴 때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VERA의 접근 방식은 충분히 유용합니다. 다만 인지저하 어르신에게 특히 효과적인 기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Q. 어르신의 관심사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나요?

    A. 입소 초기에 작성하는 개인력 및 욕구 사정 자료에 취미, 좋아하는 음식, 과거 직업 등이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호자와의 상담이나 일상 대화 속에서 조금씩 파악해두는 것이 나중에 관심전환 단계에서 큰 도움이 됩니다.

     

    Q. 매일 같은 말을 반복하시는 어르신을 상대하면 요양보호사도 지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감정노동의 피로는 현장 종사자라면 누구나 겪는 현실입니다. VERA기법을 단순한 달래기가 아니라 어르신과 공통된 관심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활용하면, 종사자 입장에서도 대화가 조금 더 자연스럽고 덜 소모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슈퍼비전이나 동료 간 사례 나눔도 번아웃 예방에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결론

    어르신의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어떻게든 설득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어르신이 아니라 제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반응이었습니다. VERA기법이 알려주는 건 어르신을 설득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있는 감정을 먼저 들여다보는 자세입니다.

    동생의 야구 이야기처럼, 작은 관심사 하나가 반복되는 하소연을 진짜 대화로 바꿀 수 있습니다. 어르신과 종사자 모두에게 조금 더 편안한 하루를 만드는 것, 그게 결국 좋은 돌봄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고 계신 분이라면, VERA의 네 단계를 한 번씩 실제 대화에 얹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nbrdyumi/224302399633